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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라인"은 한국 전쟁(1950-1953) 초기 단계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설정된 방어선을 말합니다. 이 방어선의 이름은 당시 미 제8군 사령관이었던 월턴 워커(Walton Walker) 중장에게서 유래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감행하며 한국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북한군은 급속히 남진하여 서울을 함락하고 한반도 남부로 진격했습니다.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후퇴를 거듭했고, 결국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부산과 그 인근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설정된 방어선입니다. 낙동강은 자연적인 장벽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사 전략상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이 방어선의 설정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워커 중장은 이 방어선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이 방어선을 "사수하거나 죽어야 한다(Hold or die)"는 결의로 지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워커 라인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명령은 병사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고, 방어선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는 여러 주요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전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대구 방어전: 대구는 낙동강 방어선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북한군은 대구를 점령하려 했으나,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결사적인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습니다.
  2. 마산 전투: 마산 지역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지역을 사수함으로써 부산으로의 길목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3. 포항 전투: 포항 역시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고, 이곳에서의 방어전도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함으로써 유엔군은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서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유엔군은 북한군의 후방을 타격하고 서울을 탈환하며 반격에 성공했습니다.

 

워커 라인은 한국 전쟁 초기의 중요한 방어선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월턴 워커 중장의 결단력과 방어선 사수의 의지는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반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는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의 중요한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폭격으로 불타는 낙동강 어느 강변마을(1950. 8. 10.).

 

전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판자촌 마을(1950. 8. 4.).
전란 중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다리 아래 움집(1950. 8. 8.)

 

국군 병사들이 기관총(LMG) 손질을 하고 있다(1950. 8. 13.).

 

피란민 행렬(1950. 8. 15.).

 

임시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1950. 8. 18.).

 

미 B29 전투기가 청진의 공장지대를 융단폭격하고 있다(1950. 8. 19.).

 

울산 부근,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마을(1950. 8. 23.).

 

대구, 임시로 유엔군 묘지를 마련하여 십자가를 세우고 있다(1950. 8. 25.).

 

인민군 포로들이 붙잡혀 임시포로수집소에 수용되고 있다(195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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